테렌스 타오(1975~)
테렌스 타오는 중국계 호주인 수학자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수학자라고도 불리고는 함 (물론 주관적인 거니까 생각하기 나름)
1975년 호주에서 태어난 타오는 7살에 고등학교 입학, 13살에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최연소 금메달을 따는 등 어릴 때부터 뛰어난 천재성을 발산했음. 15살 때 첫 논문을 썼고, 16살에 학사, 17살에 석사 학위를 따고 성인이 되기도 전에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했어. 이때 타오의 추천서는 무려 헝가리의 거장 수학자 '폴 에르되시'가 써 줬지.
<폴 에르되시와 이야기하는 어린 테렌스 타오>
그런데 이렇게 영재 교육을 받으며 남들과 다르게 자라던 타오는, 프린스턴 입학을 계기로 한가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됨. 타오는 학사와 석사 학위를 플린더스 대학교라는 곳에서 땄는데, 이곳은 타오의 고향인 호주 애들레이드에 있는 곳이었음.
그렇지만 프린스턴 대학교는 미국에 있고, 아직 17살의 청소년인 타오는 홀로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서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된 거지. 박사과정의 압박감 속에서,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타오는 나름의 일탈?을 하게 돼.
타오는 지역 만화방에서 매직:더 개더링을 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매직 더 개더링은 TCG 게임으로 유희왕의 원조 격 되는 게임이라 보면 됨.
<매직 더 개더링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건 타오가 동년배 또래들과 어울려 놀았던 첫번째 경험이었다 하고, 박사과정 공부의 압박감에서의 일종의 일탈이었다고도 밝힌 적 있지.
타오도 후일 영재 교육을 받느라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적었던 것이 아쉬웠다고 말한 적 있고, 천재들은 한번쯤 겪는 과정일지도 몰라. 어쨌든 그렇게 어떻게 박사과정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대학원에는, 특히 미국 박사 과정에는 아주 중요한 qualifying exam, 줄여서 퀄이라고 하는 시험이 있음. 미국 자연대/공대 박사과정에 입학하면 4년의 과정 중 초반부는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는데 높은 비중을 두게 되고, 1학년이 끝날 때 쯤에 그동안 배운 것을 바탕으로 이 퀄을 보는데, 이 시험은 탈락하면 유급이 문제가 아니라 그대로 박사 과정에서 퇴출되는 무시무시한 시험이지. 탈락하는 비율과 그 중요성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프린스턴 정도 되는 학교에서 퀄은 매우 어렵고, 중요한 관문이지. 그래서 미국 박사과정 학생들은 1학년 동안 이 퀄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해. 떨어지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가 되는 거고, 진짜 말 그대로 쫓겨나는 거니까.
그런데 타오는 이 중요한 시험에서 아주 고전적인 공부 방법을 사용함. 바로 벼락치기!
타오가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었어. 플린더스 대학교 시절에도 기말고사에 에세이 시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에세이 따위는 던진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준비 없이 시험장에 앉았는데 정작 시험지가 나오자 그제야 타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돼. 바로 이 에세이가 전체 점수의 50%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시험이라는 거... 결국 당시 12살의 타오는 울면서 감독관한테 끌려나왔었다고.
방금 내용은 뭐 반쯤 농담으로 넣어놓은 거지만 어쩌면 타오가 스스로의 두뇌에 자만했던 거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시험을 보기 전까진 진짜 쉬웠다고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이 시기에 타오는 수학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에 빠지게 돼.
바로 1991년 발매된 오리지널 시드마이어의 문명 1
이 시기에 타오는 문명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대학교 컴퓨터실에서 밤새 문명을 플레이했다고 함.
얼마나 빠졌는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도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고...
그렇게 벼락치기로 공부를 때웠지만, 아이비리그 수학과 박사과정의 관문은 결코 만만하지 못한 법, 타오는 시험장에 들어가서 (구두 시험이었다 함) 멘붕하게 되는데, 본인 말로는 '자기가 대답할 방법이 없는 문제들을 던지고 있었다' 라고... 시험이 끝난 후 타오는 지도교수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스스로 지도교수를 실망시켰다고 생각했다고 함.
그래도 벼락치기가 효과는 있었던 건지 겨우 낙제는 면할 수 있었고, 무사히 21살에 졸업할 수 있었지.
그 후 타오는 24살에 UCLA 최연소 교수로 임용되고, 2006년에 필즈상을 받는 등 수학계에서 활약하게 되지.
특히 추천서를 받았던 에르되시의 영향을 받았던 건지 몰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수학자들과 협업하며 연구하기를 즐긴다고 해. 애초에 현대수학에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가능하단 것부터 일반적인 천재의 범위는 아니지만.
그렇지만 더 이상 게임은 하지 않는다고 해. 완벽주의 때문에 게임을 시작하면 놓을 수가 없어서 애초부터 시작하질 않는다고.
그래도 고등학생들을 위한 수학 교육용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도 말한 적 있고, 게임에 대한 애정 자체는 남아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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