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베트남전 파병 파월장병들의 월급, 군표, 그리고 귀국박스

 

1965년 한국이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전투병력을 파병하게 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은 모두 미군이 담당했다. 파월 한국군의 월급 또한 사이공의 군사원조사령부(Military Assistance Command, Vietnam)가 지급했다. 

 

1969년 기준으로 당시 파월한국군 일병의 공식월급이 약 1.6달러 정도였다 그리고 전투수당이 월급보다 더 많은 30달러 이상이었다. 이렇게 보면 꽤 많이 받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미군의 1/4 수준이었다. 미군 입장에서 한국군은 잘 싸우고 말썽도 잘 안 일으키고 돈도 조금만 받는 가성비 좋은 군대였다.

 

한국군들은 매달 월급을 받아도 전액을 다 만져보지 못했다. 월급의 절반 가량은 강제적으로 저금을 해야했기에 이들이 받는 돈은 20달러도 되지 않았다. 이 돈은 한국으로 보내졌고 국가경제를 불리는데 이바지 했다. 괜히 월남전 참전용사들을 두고 외화 벌려고 전쟁하러 갔다는 말이 나오던게 아니다.

 

 

 

 

 

 

 

 

당시 베트남에서 쓰이던 돈은 3종류가 있었다. 남베트남 동, 미군이 발행한 군표(MPC), 그리고 미국 달러. 군인들의 월급은 전부 군표로만 지급됐다. 군표는 달러와 1:1의 가치를 가졌다. 남베트남인들도 가치가 불안한 남베트남 동 보다는 달러나 군표를 선호했다. 실제로도 남베트남 지하경제의 대부분은 달러로 돌아갔다.

 

한국군은 여기에 더해서 또 다른 화폐를 하나 더 사용했다. 바로 PX 구매권이었다. 이건 군표와 1:1의 가치를 가지는 일종의 제출용 화폐였다. PX에 가도 이 구매권이 없다면 군표가 아무리 많더라도 물건을 살 수 없었다. 이는 한국군들이 군표를 마음대로 유출할 것을 우려한 미군 측에서 안전장치 용도로 만든 것이다. 구매권은 1년 단위로 새로 발행했기 때문에 1년 이상 지나면 휴지조각이 되었다.

 

 

 

 

 

 

 

한국군은 미군보다 작전을 많이 나갔으며, 부대외출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군표를 쓰는 일이 적었고 대부분 PX에서나 썼다. 심지어 그 PX도 외화유출을 막는다며 많이 못가게 했다. 그래서 PX에서 취급하는 고급물건(양주, 시계, 전자제품)들은 높으신 분들이 싹 쓸어가서 구경도 못했고, 맨 마지막에 들어갈 수 있는 사병들은 고작 콜라나 담배 정도를 사는 게 전부였다.

 

당시 미군 PX물가로 맥주 한짝이 2달러가 조금 넘던 시절이었다. 한국군들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정말 아끼고 아껴 썼다. 만약 영외외출을 하게된다면 짠내투어 저리가라 할 정도로 돈을 안 쓰면서 놀았다. 그래서 베트남 상인들은 한국군들이 돈을 안 쓰는 군대라고 좋아하지 않았다. (부대 전체가 휴양지에서 콜라 한잔 사마시지 않고 하루종일 수영만 하다 돌아갔다는 썰도 있음.)

 

그래도 한국군들은 기발한 방법으로 돈을 만들어냈다. 당시 미군들은 음주행위 절제를 위해 1인당 주류구매가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강이 많이 해이했던 탓에 이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미군 PX병은 뒷돈을 받고 구매권만 있다면 얼마든지 술을 팔았다. 술을 더 마시고 싶었던 미군들은 한국군들이 PX 구매권이 남아돈다는 사실을 알고선 주말마다 한국군 부대를 찾아갔다. 한국군들은 어차피 다 쓰지도 못하는 구매권을 미군들에게 주고 대신 달러로 교환했다. 일종의 통화 스와프였다.

 

(참고로 대다수의 한국군들은 고향에서 미국달러를 볼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초창기에 월급으로 나온 군표를 진짜 달러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파병기간인 1년이 다 차면 장병들은 귀국을 준비했다. 귀국장병들에게는 '귀국박스'라는 1m 짜리 나무궤짝이 주어졌다. 여기다 개인짐을 넣고 고향집에 택배로 보낼 수 있었다. (A, B으로 나뉘었으며 B는 사진에 나오는 것들로 사병용, A는 장교용으로 더 컸다고 함.) 군인들은  박스 옆면에 자신의 고향집 주소를 먹물로 크게 써넣었다.

 

귀국박스에는 개인짐 말고도 장병들이 가족들에게 줄 선물이 들어갔다. 제일 많이 들어간 건 주로 보급으로 나왔던 C레이션이었다. 장병들은 C레이션을 외부에 배치해서 일종의 완충제로 썼다. 그리고 파병기간 동안 악착같이 모은 달러를 가지고 영외외출 때 시장에 가서 사온 일제 라디오, 선글라스, 다리미, 재봉틀 등이 들어갔다.

 

 

 

 

 

 

 

 

(검정고무신등에 나오는 '삼촌이 월남 가서 사온 냉장고'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

 

 

그런걸 살 돈도 없던 장병들은 돈이 될만한 것들을 모아서 보냈다. 대표적으로 고철이었다. 보병들은 국도정찰을 나가서 맥주캔들을 주워모았고, 포병들은 황동으로 된 포탄탄피를 모았다. 하다못해 전봇대 전선을 주워서 대검으로 고무피복만 벗겨내고 구리선을 넣기도 했다. 고물상에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본 미군 지휘관들은 한국군들이 쓰레기를 주워모으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고 여겼다. 

 

다만 나중에 가면 탄피는 적재금지 품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떤 장병이 기관총 탄환을 분해하여 모은 탄피들을 상자 가득 실었는데, 화약은 뺐지만 뇌관을 제거하지 않아 이게 배에서 터졌다고 한다.

 

그 밖에도 보급낙하산 천(실크), 베트콩에게서 노획한 장구류, 대검 같은 것도 들어갔고, 일부는 진짜 총을 넣어서 보냈다가 걸리기도 했다. (그리고 안 걸린 사람들의 총은 이후 수십년이 지나서 주인이 사망하고 나서야 발견되어 경찰서에 자진신고할때 등장하기도 했다. 요즘도 가끔 나온다.)

 

 

 

 

 

 

 

 

고향집에 먼저 도착한 귀국박스는 마을의 구경거리였다. 그 안에는 열대의 정글에 돈 벌러 간 아버지, 아들, 손주가 보내온 물건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고, 외국물건을 구경하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귀국박스는 한국인들에게 외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소중한 경로였다.

 

귀국박스는 군용으로 만든거라서 꽤 튼튼했기 때문에 꽤 다양하게 사용됐다.  현재도 시골에 가면 오랜 세월동안 헛간이나 마당에 놓인 귀국박스가 있는 집을 가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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