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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재미로 보는 우정과 사랑이 넘치던 일본 전국시대의 최고 미남들

by 누루하치 202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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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간의 선 넘는 우정과 사랑이 넘치던 일본 전국시대의 미남들에 대해 알아보자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어려서부터 총명하기로 유명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지략하면 서쪽엔 고바야카와, 동쪽엔 나오에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의 중진으로 참전해 벽제관 전투에서 조청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어낸 장수이기도 하다

 

에도 시대에 지어진 '음덕태평기'라는 책에는 

'다카카게는 용모가 심히 아름다워, (주군인) 오우치 요시타카로부터 남색의 대상으로 총애 받았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초상화 못 찾음)

스에 하루카타

 

전국시대 초기, 일본 서쪽에서 넘사벽의 세력을 자랑하던 오우치 요시타카의 가신으로서 문무에 두루 능했다 한다

일러스트처럼 외모가 몹시 아름다워 요시타카의 남색 상대로서 큰 총애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훗날 자신의 주군을 배신해 오우치 가문을 멸망시키는 한편 그 권세를 장악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게 부상하는 모리 가문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배해 도망치다 자결하게 되는 인물

 

 

 



마쓰나가 히사히데

 

막부의 수장인 쇼군을 살해하고 밥 먹듯이 배신을 했다는 혐의 등으로 '대악인'으로 불리운 효웅

다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주군에게 충성하고 영지의 백성을 어루만졌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당대 기록에 의하면 '미남에 교양이 풍부했으며 행동거지가 우아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예술인 인물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가져와도 바꾸지 못한다는 당대 최고 명품 도자기 '히라구모'와 함께 자폭을 한 인물

 

 

 



오다 노부나가

 

오다 일족 자체가 대대로 미남 미녀 많기로 유명한 집안으로서,

여동생인 오이치 역시 당대 최고의 미녀로 아자이 나가마사,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바타 가츠이에 등 수많은 장수들이 탐냈다

 

서양인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쓴 책인 '일본사'에 나온 노부나가에 대한 묘사를 보면,

'평균적인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가는 수염, 높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나와 있다

그는 자신의 시동이자 충직한 부하로 유명한 모리 란마루와 남색 관계였다는 추정이 많다

 

 

 

 

아케치 미쓰히데

오다 노부나가의 심복이자 결국은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에 반역하는 인물

철포(조총)의 명수이자 당대 최고 수준의 풍류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젊은 시절에 귀공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며,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는

'서양의 왕과 귀족들에게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나온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탈모빔을 세게 맞아 머머리가 되면서 노부나가로부터 '귤대가리' 등과 같은 모욕적인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소카베 모토치카

 

일본에서 가장 촌구석으로 평가 받는 시코쿠의 패자(覇者)

어린 시절에는 매우 곱상한 외모로 무장에게는 다소 모욕적일 수도 있는 '공주 아씨(姫若子)'라는 별명이 있었다

 

하얀 피부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생긴 별명이라 하는데, 장남인 노부치카 역시 약 180cm 장신에 피부가 하얗고 미남이었다 한다

오랜 기간 나뉘어진 시코쿠를 통일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새 없는 섬의 박쥐'라는 모욕을 받았다

(덕분에 일본 역덕후들 사이에서 별명도 '박쥐' 또는 '황금 박쥐'이다)

 

 

 



코사카 마사노부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 휘하 4대 명장 중 한명이었던 인물로 전쟁터에서 총면(가면)을 쓴 초상화로 유명하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아름다워 신겐을 항상 가까이에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다케다 신겐의 동성애 상대로서 명망이 자자한데, 신겐이 마사노부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지금까지 야시치로에게 수작을 건넸던 일은 몇번 있으나, 복통이라는 등 이런저런 구실로 거절당했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2. 나는 야시치로와 육체 관계를 맺은 일이 없다. 이전에도 결코 그런 적이 없고, 낮에도 밤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 

   하물며 오늘 밤 그런 생각은 꿈에도 갖고 있지 않다.

3. 그대와 맺어지고 싶다고 생각하여 이런저런 손을 쓰고 있는 차에, 거꾸로 의심을 받으니 안타깝다.

 

지금까지 한 말에 추호라도 거짓이 있다면, 고슈 제1, 2, 3 대명신, 후지, 하쿠산 신사의 신들, 거기에 하치만 대보살,
스와상하명신(諏訪上下明神)에게서 벌을 받을 것임을 신들 앞에 서약한다.

본래대로라면 보인(부적)에 써야 하지만, 심부름꾼의 눈도 있고 해서 보통의 종이에 써서 보낸다. 내일 고쳐 써서 보내겠다. 

- 7월 5일, 카스가 겐노스케에게, 하루노부

 

(이 구구절절한 편지 덕분에 이 새끼는 진짜 빼도박도 못할 전국시대 대표 게이가 돼버렸다)

 

 

 


(NHK 대하사극 '천지인'의 나오에 카네쓰구)

나오에 카네쓰구

 

도요토미 정권의 오대로(五大老) 중 하나였던 우에스기 카게카쓰의 심복

위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에서도 말했듯,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지략하면 서쪽엔 고바야카와, 동쪽엔 나오에'라 할 만큼 출중한 인물이다

 

'명장언행록', '츠네야마기담' 등 책에는 '키가 크고 언변이 시원하며 그 용모가 비할 바가 없다'는 찬사가 나와 있다

대단치 않은 집안에도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얼굴이 잘생겨 명문 우에스기 가문에 들어가 승승장구 했다 하는데,

다행히 다른 장수들과는 다르게 우에스기 카게카쓰의 남색 상대였다는 기록은 없는 듯 하다

 

(그리고 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판하기 위해 쓴 편지인 '나오에장'은 이에야스를 분노케 만들어

천하를 동서로 가르는 대전인 세키가하라 전투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다만 그가 실제로 나오에장을 썼는지는 논란이 있음)

 

 

 


(NHK 대하사극 '천지인'에서의 우에스기 카게토라)

우에스기 카게토라

 

'간토(관동)의 사자'로 불린 호조 우지야스의 7번째 아들로 훗날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로 입적된다

'삼국제일의 미모'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로 빼어난 용모를 자랑했다고 하는데(여기서 삼국은 일본의 가이, 스루가, 간토 지역),

잠시 가이의 다케다 가문에 있던 시절 '사부로(카게토라의 다른 이름) 님과 하룻밤을 보낼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라는 글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다만 우에스기 겐신이 죽은 이후 가문 후계자 전쟁에 뛰어들다가 온 가족이 몰살당하게 되는 비운의 인물

 

 

 

 

오타니 요시쓰구

 

어려서부터 총명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코쇼(시동)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 시동이라 함은 주군의 심부름을 하는 한편 남색 상대를 해주는 것이 주요 임무였으나, 

다행히 히데요시가 출신이 미천한 관계로 오로지 여자만을 밝혀 아마 남색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히데요시는 남색을 싫어하고 여자만 좋아해 다른 영주들로부터 '출신이 미천해 남자의 멋짐을 모른다'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출중한 외모로 보는 사람들마다 감탄했다고 하나 나병(한센병)에 걸려 사진처럼 흰 천으로 온 몸을 감추게 된다

하루는 서로 찻잔을 나눠 돌아가며 마시는 행사에 참가하게 됐는데, 모두가 나병 환자 요시쓰구의 잔만은 꺼려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준 잔을 의연히 원 샷 때려버린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감복했고, 결국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문제는 미쓰나리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이상한 때문에 다른 영주(다이묘)들 대부분에게는 통수를 맞아 죽게 된다)

 

 

 



이이 나오마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충직한 장수인 한편 출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던 인물

그는 어떻게든 전공과 실적을 만들기 위해 전쟁터에서 미친듯이 싸워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으며 결국 그 상처로 인해 일찍 죽는다

(드물게 여자 성주가 가문을 책임지던 작은 집안에서 힘겹게 어린 시절을 보낸 것에 한이 맺혔다 한다)

전공을 위해서라면 같은 편 뒤통수를 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본인 최고의 실적은 통수로 이루어냈다

 

그는 굉장한 미남이었으며, 그 때문에 동성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조차 그를 남색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이른바 도쿠가와 사천왕 중에서 가장 어렸지만 결국 가장 출세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도 그 때문이었을지도

 

 

 

 

- 이미지에서의 묘사와는 다르게 사나다 유키무라, 다테 마사무네는 잘생겼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특히나 유키무라는 산 속에서의 유폐 생활로 용모가 추해졌을 가능성이 높고, 마사무네 역시 애꾸였다는 걸 감안하면...

- 대놓고 외모가 추했다는 기록으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있다. 서양인 선교사가 '추악하게 생겼다'고 대못을 박음

- 기록하고 초상화를 살펴보면 오다 노부나가와 조소카베 모토치카가 현대 기준으로도 미남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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