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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나눔

조선의 왕자 중 가장 기구한 삶을 살다 간 왕자 은전군 이찬

by 디디도도뽀닥 2022. 11. 14.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의 이야기,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어릴 때 부터 정신적으로 가혹히 학대했고

 

사도는 결국 미쳐버려 비행을 일삼다가 영조의 손에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정조와 영조, 사도세자를 보통 기억한다.

 

그러나 사도세자 만큼이나 비극적이지만

 

잘 알려지지않은 인물이 있는데,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인

 

은전군 이찬이다.

 

은전군 이찬은 사도세자의 애첩 빙애(氷愛) 의 아들이다.

 

빙애는 숙종의 왕비인 인원왕후의 궁녀였는데, 사도세자는 빙애를 좋아하였고

 

인원왕후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빙애를 후궁으로 들일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영조는 극렬히 반대했다. 아무리 왕세자라 할지라도 왕실 어른의 사람과, 그것도 상중에

 

혼례를 올리는 것은 대단히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떄문이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심하게 꾸짖고 빙애를 데려올 것을 명하였지만

 

사도세자는 영조를 두려워하여 다른 후궁을 빙애로 분장시켜 보냈다. 하지만 영조가 이 사실을 알고

 

빙애를 내치려 하였는데, 사도세자는 우물에 빠져 자살시도를 하기도 하였다.

 

영조는 마지못해 빙애에게 종6품의 벼슬을 주어 첩으로 들이는 것을 허락하였다.

 

 

 

 

훗날 은전군 이찬이 태어났지만

 

사도세자의 광기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사도세자의 의대증(옷을 입기를 거부하는 병)이 심해져

 

심지어 옷을 입히는 내시와 궁녀를 죽이기 까지 하였기에

 

정실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의 옷을 입히는 일을 맡아 하였는데, 사도세자의 발작증세는 더욱 심해져

 

홍씨에게 벼루를 집어던져 홍씨가 실명할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자, 사도세자가 아끼는 애첩인 빙애가 옷을 입히는 일을 맡아 하였으나

 

사도세자는 빙애를 때려죽이고

 

은전군 이찬을 칼로 때리고 연못에다 집어던져버렸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난동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사도세자의 새어머니 정순왕후가

 

연못에 빠진 은전군 이찬을 구해냈고

 

 

 

 

은전군 이찬은 궁전 사람들로부터

 

연못에 빠져 죽을뻔 했으나 살아났다는 뜻인

 

하엽생(荷葉生)

 

즉, 연잎이 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때 은전군 이찬의 나이는 겨우 1살이었다.

 

영조는 이 사건으로 크게 진노하여

 

"왕손의 어미를 네가 처음에 매우 사랑하여 우물에 빠진 듯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마침내는 죽였느냐? 그 사람이 아주 

강직하였으니, 반드시 네 행실과 일을 간(諫)하다가 이로 말미암아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라고 일갈하며 크게 꾸짖었다. 영조는 빙애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으나, 빙애의 인품은 좋게 보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찬이 3살이 되던 해

 

이찬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다.

 

그리하여 이찬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손에 죽고

 

어머니는 아버지에 손에 죽게 되었고

 

궁녀들 사이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사도세자와 정조를 견제하던 노론 벽파 세력은

 

은전군 이찬을 왕위에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조가 사망하고 정조가 즉위하자,

 

정조가 자신의 대리청정을 방해하고 전횡을 일삼은 풍산홍씨 홍인한과 정후겸을 처형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들은 당시 조정의 실세들이었는데, 그들이 처형당하자 홍상범은 궁 내의 호위무사들을 포섭해 정조를 죽이고

 

은전군 이찬을 옹립할 계획을 세운다(정유역변). 당연히 은전군 이찬은 꿈에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바로 '역린' 이다. )

 

이 일을 시작으로

 

풍산홍씨 일가는 대거 역모를 꾀하기 시작하였고, 이 중에는 정조의 외삼촌, 즉,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친동생도 있었다.

 

이렇듯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은전군 이찬과 관련한 역모가 끊이질 않자

 

대신들은 이찬에게 사약을 내려 죽일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정조는

 

"형제 중에 은신군 이진은 일찍 죽고, 은언군 이인은 병약해서 목숨만 겨우 붙어 있다. 겨우 사람 구실 하고 있는 건 은전군 뿐이니 양해해 달라"

 

라며 사형요청을 반려하였다.

 

하지만 대신들의 요구가 너무나도 강하였으며, 역모가 끊이질 않았고, 상소문이 60번이나 올라오는 등

 

도저히 정조입장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정조는 눈물을 흘리며 이찬에게 자진을 명하였다.

 

당연히 영문도 모른 채 역모에 휘말린 이찬은 자신이 역모를 꾸민 적도 없고

 

그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럴 수는 없다며 완강히 저항하지만

 

대신들의 요구가 너무나도 완강하였기에 어쩔수 없이 사약을 받아 죽게된다

 

정조는 이찬의 사후

 

'가련한 자' 라는 뜻의

 

연재(憐哉) 라는 자를 내려주었다.

 

이 때 은전군 이찬의 나이는 겨우 1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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