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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뉴기니 마을 주민의 증언 전쟁의 광기 충격적인 일본군의 식인사례

by 디디도도뽀닥 2022. 12. 7.

일본군 식인 사례

뉴기니 마을 주민의 증언

1945년 4/12  일본군이 뉴기니 T 마을을 습격하여 식량과 주민들 2명을 잡아갔다

 

잡혀간 2명중 한명은 살해당하고 나머지 한명은 도망쳤지만 다시 돌아간 1명은 그곳에서

살이 잘려나간 시체 2구를 발견했다.

 
나중에 일본군을 따라간 마을주민 3명중 1명이 1945년 5/10 증언.

 
나는 W의 시체를 발견했어요.가슴,허벅지,장딴지,엉덩이,그리고 등에서 살이 잘려 나갔어요.

어깨가 잘려 양팔도 없었죠.그런데 내장은 손대지 않았더라구요.

머리 끝부분이 잘려 나가 뇌가 없었고,살은 날카로운 도구로 잘린 것 같았어요.

일본군이 요리하려고 피워놓은 불에서 사람의 팔뼈를 발견했는데,익은살덩어리가 아직도

불에 엉겨 붙어 있었어요. 그 불 주위에는 타로와 얌 부스러기들이 있었어요

 

1943년 미군 보고서

해병 163보병 군의관

헨리 C. 스미스 대위검시

 

1943년 1/24  E.H. 일병이 일단의 일본군을 포획하는 작전 도중 살해.

 

다음날 그의 시체는 163보병연대 G 중대 윌리엄 C. 벤슨 중위에게 발견되었다.

 
배는 2개의 십자형으로 개복되었고 허벅지와 엉덩이 살은 제거되었다.

하부 갈비뼈 외곽에서 치골까지 복부 중심선 절개,잘 드는 칼로 직선으로 깨끗하게 잘렸음.
허벅지 옆부분에서 약 가로 4 세로 12 깊이 2인치의 피부와 살덩어리가 예리하게 잘려 나감.


163 보병 연대 M.W. 일병은 1943년 1/24 작전중 사망

 

양쪽 허벅지에서 살덩어리가 잘려나간 것을 확인.


1943년 1/19  실종된  H.B. 병장

 

1/23 몸이 절단된 상태로 발견,허벅지와 양족 다리의 살 부분 잘려 나감.

복강은 갈비뼈 아래에서 피부와 살을 절개해서 열려 있음.얼굴을 잘리지 않아 확인 가능.

 

일본 벙커에 있는 그릇에 사람의 것과 비슷한 크기의 심장과 간이 들어 있었다.

다른 많은 사례도 일본군 식인행위가 희생자의 내장과 생식기까지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언급

어떤 경우에는 뇌를 가져가 버려 얼굴이 많이 손상되어 신원을 확인하기가 어려웠음.

 

1945년 5/22 사람의 창자를 요리했다는 것이 보고서에서 확인.

 

 

호주군 증언

F.M.부대 포획 호주장교 데이비드 페인버그 대위

보고서

도쿄 호주군 전쟁범죄부가 심문 1947년 6 /17 일  F.M.중위 진술.

 

F.M은 1945년 5/3  T마을 인근에 주둔한 41명의 일본군 부대 지휘관으로 주민 살해와 식인을

자기분대 사람들이 저질렀으나 본인은 몰랐다고 주장함,나중에 알게되어 관련된 3명에게 위험한

전방순찰과 정찰임무를 부여했다고 함(그 3명은 항복하기전 전투에서 사망)

 

F.M.은 현지인들의 식인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은모른다 주장했지만 심문하던 장교는 그의 서류철에 <그는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며 체질적으로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평함.

 

호주 장교 보고서는 이들 부대가 군기가 잘 잡혀있어 장교들의 승낙과지시없이 그 어떤 잔악한


행위도 저질러질 수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함.

 

또 다른 보고서 - 1945년 5/3  W지역에서 잡은 일본군들(특히 장교)의 신체상태는 양호했고

일본군 장교들은 휘하 인원을 잘 통제하고 잇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호주군 전쟁범죄부 보고서 미포함 범죄]

 

호주군 지휘하의 파푸아 보병대대/뉴기니 제1,2,3보병 대대 군인에 가해진 식인 

 

약 4,000명 이상의 군인들이(500명의 호주군 장교,사병) 파푸아뉴기니 본섬,뉴브리튼섬,부갱빌에서 일본군과 싸웠는데 장교 딕 콜린스는 전투중 죽은 군인의 시체를 찾을 수 없는 사례가 있었는데

온 부대는 종종 일본군 식사 깡통에 사람의 잔해가 있는 것을 발견함

 타치바나 요시오 부사단장

식인 일본군 중 가장 높은 직위-11명의 일본군과 1946년 전범재판에 붙여짐.

1944년 8월,치치지마섬,보닌섬에서 미해군 조종사들을 처형하여 적어도 한 명을 식인.

해군 조종사들은 타치바나의 명령에 의해 목이 잘려짐.

인도인 포로 증언

랜스 나익 하탐알리

일본군은 포로들을 선별하여 매일 한명씩 죽인 후 먹었다. 

나는 직접 그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일본군은 그곳에서 100여명의 포로를 식인하였다. 

나머지 포로들은 약 80킬로 떨어진 다른 장소로 데려가 그곳에서 10명의 포로들이 병사하였다. 

거기서 일본군은 또 다시 포로들을 선별하여 먹기 시작했고  선택된 포로를 오두막으로 데려가

산채로 살을 몸에서 도려내었다.그후 나머지 몸을 구덩이에 버렸고 포로는 구덩이 안에서 죽어갔다

인도인 포로 증언

하빌다르 창디 람

1944년 11/12  켐페이타이가 연합군 공군 조종사의 목을 잘라 일본군이 그의 팔,다리,엉덩이 살을

도려 내어 그들의 막사로 가져갔다...그들은 살을 작게 토막 내어 불에 튀겼다

일본 퇴역 군인 수기

와가와 쇼지 43년 12월/44년 3월

일본군이 북부 중앙 뉴기니에 있는 피니스테르 산맥을 넘어 후퇴할 때 목격.

 

길에 한 군인의 시체가 있었는데 허벅지가 크게 잘려 나갔어요.

조금 있다가 다른 부대의 군인 4,5명이 우리를 불렀을 때,나는 Y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어요.

그들은 식사를 하는 중이었는데 가까이에 음식 깡통이 있었어요.그들은 뱀고기 덩어리가 큰게

있다면서 같이 먹자고 했어요.우리는 그들이 뭔가 숨기고 잇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 반응을 살피듯이 쳐다보는 태도에 뭔가 꿍꿍이가 있었어요.

우리는 서둘러 조심스럽게 그 곳을 떠났고 그들이 우리를 쏠까봐 겁이 났어요.

한참 걸은 후 Y가 내게 말했어요.너무 이상해.그들이 뭘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만약 그게 뱀고기였다면 그들은 조금도 나눠주려고 하지 않았을 거야.

 

일본 해군 헌병 대장

노기 하루미치 회고록

암본 주둔 필리핀 사건을 언급 - 종전직후 한 일본군 중위가 그에게 보고한 내용.

 

산에서 산으로 퇴각하는 일본군의 대부분은 약탈자였습니다.먹을게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제비뽑기를 하기로 했어요.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기로 한 거죠.

그러나 진 사람이 도망치기 시작해서 우리는 그를 쏘았어요.그는 결국 잡아먹혔어요.


당신은 아마도 우리들 중 다수가 현지 여자들을 강간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굶주림을 채워줄 대상으로 생각되었어요.우리는 성욕이 없었어요.

강간을 하는데는 힘이 너무 많이 듭니다.우리가 꿈꾼 것은 먹을 것 뿐이었습니다.

나는 사람의 팔과 다리를 가져가는 군인들을 산에서 만났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한 것은 게릴라가 아니라 일본 군인들이었습니다.

미군 제 8 기갑부대

에스피노자 2세 보고서

제8기갑부대 F부대의 순찰병으로서,일본군 시체를 발견.

 

순찰대는 전날 밤 총성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고,마누스 섬 보후아이 동남쪽 300야드 까지

진행했습니다.일본군 오두막에서 1명이 오두막 바로 밖의 덤불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집 안에 있는 다른 3명을 쏘았습니다.첫번째 일본군은 덤불 아래 누워 있는 시체의

피를 손에 묻히고 있었습니다.우리는 그 덤불에서 도살당한 일본군 시체를 찾아 냈습니다.

두 다리의 종아리 살은 말끔하게 잘려 나가 있었습니다.그 일본군 시체는 손이 묶여 있고 허리에

줄이 묶여 있었습니다.우리는 오두막 안에서 피 묻은 칼,주방 기구,도살에 쓰인 조잡한 기구들을

찾아냈습니다.그리고 돌아와 보고했습니다.상부에서는 더 조사하기 위해 밀러 중위 지휘하에 작은 규모의 순찰대를 보냈습니다.

 NX 14674 A.B.카슨 중위

00,00 및 00은 00일 오후 적 진지를 공격하다가 사망했다.

 

우리 부대는 시체를 빼내오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희생자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3세트의 호주군

웹장비,부츠 두 켤레,옷 두 벌,다른 잡동사니를 발견했다.추가 수색으로 00에 의해 00의 것으로 쉽게 인지되는 두피를 찾아냈다.창자는 통나무에 걸쳐져 있고 불에 탄 살 조각,탄약갑에는 간으로

보이는 조각들이 있었다.300야드 정도 떨어진 오두막 밖에서 불에 탄 뼈가 발견되었다.

 

100야드쯤 떨어진 다른 오두막 밖에서 다리,허벅지,어깨뼈 등이 사람 살덩어리와 함께 발견되었다. 또 다른 오두막 밖에는 00의 머리가 있었다.두피를 벗긴 머리와 등뼈로만 구성된 그 시체는 바닥에 놓여 있었다.이 잔해 옆에는 타서 숯이 된 손목과 손이 놓여 있었다.

 

첫번째 오두막 안에서 AAB 83과 아테브링(atebring,상표명) 명부가 발견되었다.

 

A.B. 카슨 서명-나의 앞에서 서명됨,소령 니스벳 서명

미군 보고서

H.F. 중위 1943년 1/8 일 전투중 사망.

 

1943년 1/11일 시체를 찾았는데 왼쪽 팔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장딴지의 살덩어리들이 잘려 나갔고 내장이 꺼내져 있었으며 심장과 간도 없어졌다.같은 날 팔뚝 뼈가 무군 근처 북동쪽 일본군 주변 400야드 부근에서 발견되었다.일본군은 전투중인 그 지역에서 연합군이 그 시체를 찾지 못하게

다른 군인들이 막는 동안 안전한 곳으로 요리해 먹은 것 같다.

호주 전쟁 보고서

파키스탄,대만 강제노동자

1942년 2/15 파키스탄 군인 하탐 알리-43년 뉴기니 마노콰리 비행장 건설에 투입.

 

우리는 300마일 덜어진 곳에 끌려가 하루 12시간 작업을 했죠.먹을게 거의 없었어요.

포로들은 풀과 나뭇잎을 먹었는데뱀,개구리,그리고 다른 곤충들까지 먹었어요.

여기서 일본군은 매일 포로 1명을잡아먹었어요.약 100명의 포로가 일본군에게 잡아먹혔어요.

나머지는 50마일 떨어진 곳에서 10명이 병으로 죽었는데 일본군은 또 포로를 고르기 시작했어요.


선택된 포로는 오두막으로 데려가서 산채로 살을 잘라내고는 그대로 도랑에 버렸어요.

선택된 포로에게서 살이 잘려 나갈 때,버려진 뒤 도랑에서 고통에 못이겨 내지르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려 왔어요.울음소리는 점점 희미해졌어요.....

 

알리도 오두막으로 끌려갔지만 도망쳤고 그는 15일간 정글을 돌아다니다 호주군에게 구조되었다.

 

많은 대만인 노동자들도 태평양 지역 군사시설 건설을 위해 일본군에게 동원되었다

미군보고서에 일부 대만인들도 이 지역에서 일본군의 식인에 희생되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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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기니 북서부의 비아크 섬 사건/북동쪽 비스마르크 해의 마누스 섬 사건

 

107 비행장 측량 및 건설부대 2중대,대만인 노동자 PW,JA는 1944년 8/28 보로키에서 미군에 투항


1944년 8/28 비아크 섬에서 PW가 식량을 구하는 동안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총소리를 들음

그는 2명의 일본군이 108 비행장 측량 건설부대 출신의 죽은 대만인에게 접근해 옷을 벗기고 칼로 다리를 잘라내는걸 보았다.PW 는 바로 다른 대만인에게 알렸고 그들은 미군부대로 도망쳤다.

 

1944년 7월 PW는 C.Z.R로부터 일본군들이 죽은 대만인 시체를 수집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들음1944년 8월 4일 PW는 C가 같은 목적으로 와르도 근처에서 일본군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음


1944년 8/14,15  PW는 고향 친구 R.H.K의 시체를 보았고 남쪽 밭에서 다른 두 구의 시체를 보았다. 머리와 뼈만 남은 시체로 모두 목을 가로질러 벤 흔적이 보였다.그는 15명의 다른 대만인 시체에서 살이 잘려져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일본군과 대만인은 따로 식사를 준비했다.일본군은 고기를 개고기라 주장했다

그는 섬에서 개를 본적이 거의 없던지라 매일 개고기를 공급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PW가 본 고기는 껍질이나 털이 거의 없었다.그가 아는 개고기는 껍질이 두텁고 털자국이 빽빽하게 나 있는 것이었다.그는 사람고기는 구워서 먹어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1944년 6월 PW와 다른 13명의 대만인이 연합군에 투항하러 가던중신원을 알 수 없는 약 100명의

일본군이 이들을 가로막았다.대만인 8명이 죽었는데 그가 죽은척 하고 있는 동안 PW는 일본군이

죽은 대만인에게서 빼낸 창자를 자기 음식 그릇에 넣는 것을 보았다.일본군은 곧 떠났다.

 

1944년 8/15 JA는 숨이 붙이 있던 대만인 셋을 보았다.그들은 정글에서 약 15피트 떨어진 곳에

피로 물든 웅덩이에 누워 있었다.각각  가슴에 칼을 맞았고 허벅지는 살이 잘려 나갔다

호주인 희생자 보고서

45년 5/20 뉴기니 연합군 호주인 희생자 보고서

 

00대대 SX 8064 WO 2 HUGO C 진술.

 

0월 0월 아침 9시

TLNX 79420 GRIFFIN.J.상병,고인 SWELL 병장,나는 00에서 적에게 살해당한 00의 시체를 찾아냈다.


(a) 옷은 모두 벗겨졌음
(b) 두 팔은 어깨에서 잘려 나갔음
(c) 위가 잘려 나가고 심장,간,내장이 모두 없어졌음
(d) 시체의 살 부분은 모두 잘려 나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음
(e) 두 팔, 심장, 간 그리고 내장은 발견할 수 없음
(f) 손대지 않은 시체 부위는 머리와 발 뿐임

 

사람 살덩어리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일본군 음식 깡통이,죽은 일본군 두 명 사이에 있는

00의 시체로부터 4-5 야드 거리에 있었음.

 

(서명) C.HUGO WO 2   SX8064

일본 정부 문건

구해군 군속신상조사표

진상조사 보고서- 나무위에 올라가 겨우 목숨을 건진 조선인 징용자 증언

 

1942년 초 조선인 800~1000명이마셜제도 동남쪽 끝 밀리환초에 강제 동원됐다.

 

이 일대 토질과 기후가 나쁜데다 미군의 공격으로 식량 보급이 끊기자 1945년초 일본군이

고래고기를 내밀었고 조선인들은 이 고기를 먹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조선인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이상히 여긴 사람들이,근처 무인도에서 조선인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분노한 조선인들이 2/28일 일본군 7명을 살해했지만 그후 100명이 보복총살로 학살되었다.

일본 고전 다큐멘터리 영화 <가자 가자 신군>(영어 제목을 번역한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음) 보면 저 식인 사례가 적나라하게 드러남. 뉴기니에 들어간 일본 육군 부대 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총살 사건을 당시 부대 내에 있었던 사람이 전직 장교들을 찾아다니면서 철저히 파헤치는 내용인데, 결국 영화 마지막까지 가면 전직 장교 중 하나가 '생존에 필요없으면서 계급이 낮은 병사들에게 탈영 혐의를 씌워서 총살한 뒤 잡아먹었다' 라는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꺼내는 장면이 나옴.

또다른 고전 일본 영화 <들불>에서도 필리핀에서 고립된 일본 군인이 다른 일본 군인을 쏴죽이고 잡아먹으면서 원숭이 고기라며 다른 군인에게 권하는 등의 장면이 나오는 걸 보면 저 당시 일본에서도 일본군의 식인 사례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일이었던 것 같음.

 

진짜라면 치치시마는 빙산의 일각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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