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메이 대기근 1782~1788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대기근 소빙하기겹친것도 힘겨운데 아사마라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말그대로 재앙이였음
텐메이대기근에 일어난 농민반란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써 그나마 구휼에 노력했지만
일본은 '번'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상황이였고
당시 쌀을 모으지않고 금,은을 국가재산으로 확보한 중상주의정책을 펼쳤기때문에
그나마 시중에 있는 쌀가격이 미친듯이 폭등함
원래 땅이척박한 규수나 훗카이도는 고구마,감자를 경작했던곳이라 피해가 덜함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긴 일부 세력가들이 구휼을 위해 움직였지만
그들또한 이 대기근이 6년이나 진행될줄몰랐음
게다가 이 기간동안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연달아터지면서 인류 전체가 흔들리기시작함
살아남기위해 인육은 필수였고
가족을 먹을수없다는 죄책감떄문에
이웃집과 인육을 교환하는 문화가 있을정도
그래도 일본은 6년이라는 장기간의 대기근에도 조선보다는 피해가 적은걸로 기록되는데
일본전역을 강타하지않음 대기근전에 시민들 등골 쫙쫙 빨아먹어서 금,은등 .쌓아둔재산으로 수입에의존함
기록축소 물론 기근이덮친 번들은 조선보다 심했다고함
당시 기록에 따르면 토호쿠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아사자 2만 명 내지 수만 명이 나왔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실제보다 피해를 축소한 수치라고 본다.
경신대기근 당시 조선의 지방수령들이 그랬듯이 각 번에서 문책을 피하고자 아사자 수를 줄인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아사자 수는 당시 기록보다 한 자리쯤 더 많다고 본다.
이와키산 근처 히로사키 번만 해도 사망자가 8만에서 13만 명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90만 명쯤은 되었을 것이다.
당시 난부 번에서 아사자 40,850명, 병사자 23,848명, 가족전멸로 폐허가 된 집 10,545채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대기근이 혼슈를 휩쓸었다.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의 타이세인이라는 절에 당시 기근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비석을 1785년에 세웠다.
비석 뒷면에는 기근으로 인육까지 먹었다는 기록을 새겼으나, 후에 누군가가 이를 부끄럽게 여겼는지 해당구절을 의도적으로 깎아서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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